지리산 둘레길 들어보셨죠?
며칠전 친구와 거길 다녀왔습니다.

어렸을때 친구들과 비둘기호, 통일호를 타고 젊음을 불사르던 낭만을 느껴보고파서
창원에서 타면 가장 멀리, 가장 긴 시간을 간다는 목포로 무궁화호를 타고 갈 계획을 세웠다가
1박2일을 보고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지리산 둘레길로 정했습니다.

보기엔 좋데요. 지리산 둘레길.
사실 전 둘레길이라고 해서 둘레만 도는 길인줄 알았습니다.
만약 등산이었다면 전 과감히 포기했을 겁니다.

저는 아마 등산유전자가 선천적으로 없거나 부족한것 같습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은 싫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창원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출발



금요일 오전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대충 물한잔 마시고 오이를 사들고 창원버스터미널로 고고고.
진주에서 타신 두분은 저희처럼 배낭을 맨 젊은여성. 그리고 또 한분은 배낭맨 젊은 남성.

저희는 2코스가 시작하는 운봉에서 내렸습니다.
이때 시각이 4시가 넘었습니다. 2코스는 6시간이라고 나와있어내일부터 시작할까하다 읍사무에
들어가 물어보니 
걸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출발.

운봉읍사무소입니다.

아주 낭만적인 2코스의 시작

둘레길 표지목.



거울속의 나와 친구



2코스는 출발부터 3/2지점까진 평지라 정말 즐겁게 걸었네요.
물론산길도있었지만 첫날에다 힘이 남아있어 그닥 문제될건 없었거든요.
런저런 이야길 하며 첫날 어둑어둑해질때쯤 인월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멋진 청년이죠?



길은 사람과 사람을 아주 자연스레 이어주는 소개꾼이네요.
첫날 걸으며 좋은 두분을 만났습니다.
기약없이 서울에서 아침에 버스타고 내려온 아리따운 여성과 기차타고 내려온 건실한 젊은이.

이 젊은이는 이후 내내 저희와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저희는 술익는 집이라는 민박집에서 하루 유했습니다.
늙으신 노부부가 운영하는 집인데 방에 딱 들어선 순간 아!!
꼭 우리집같습니다. 텔레비젼이며 가구들이 우리집과 비슷합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차려 주시는데 집에서 먹는 밥과 똑같습니다.
일단 식당밥이 아닙니다.  두분이서 잡수시는 밥에 양만 조금더 했습니다.
머슴밥을 먹고 일단 집을 나섭니다.

이 세상의 천국이 여기!

저 멀리 지리산이...

길위의 친구들



둘레길 둘쨋날.
뭐든 두번째, 2, 이틀...
조심해야합니다.
각오를 단단히 합니다.
제일 힘들다는 3코스.
그래도 길인데.... 라는 생각에 당당히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가다 갈림길입니다. 한쪽은 조금 쉬워보이고 다른 한쪽은 산으로 가는 길 같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 사람이 다니는 길인데~ 라는 생각에 산으로 가는 길을 갑니다.
사실 우리 바로 앞에 연인이 가고 있는데 이분들이 밑에 있는 길로 갔거든요.
뭐 객기였습니다. 밑의 길은 너무 쉬워 보일거라는 생각에...아주 엄청난 착각을 한거죠.

죽도록 힘듭니다. 가도가도 계속 오르막입니다.
숨이 턱을 턱턱 칩니다. 이건 아니야 를 수백번 외칩니다. 애궂은 친구랑 동행만 탓합니다.
계속 저주할거야~ 이러면서......

오르고 또 오르고

이 죽일놈의 오르막

와 많다!!



어찌어찌 앞으로 나아가 집니다. 그래도 한번 시작했으니 포기는 못하겠더라구요.
길에서 또다른 인연을 만납니다.
어제의 그 아가씨와 중년부부.
아저씨께서 저녁에 닭을 사주신답니다. 아싸.... 힘내서 열심히 걷습니다.
그러나 이 약발도 10분을 못넘기네요. 죽을 것 같습니다. 
두번다시 둘레길을 오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을 합니다.
이건 길이 아니야~~~~~~~~~~~~~~~~아~~~~~악~~~~~ 헥헥!!!
계속 외칩니다. 때론 속으로... 때론 밖으로 드러내서....

등구재는 어찌어찌 넘었습니다. 이제는 끝이라고 합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이미 넘어왔습니다. 창원마을이 앞입니다.
같은 창원이라고 우리 동네라며 농담도 하며 걷습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오르막이 보입니다.
설마 합니다. 에이 설마.....
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조심 갑니다.
이런.... 정말 오르막입니다... 
그래도 그 힘들다는 깔딱고개도 넘었는데..... 
아닙니다. 깔딱 고개는 거기가 아닌 여깁니다.
결국 당이 부족해지고 하늘이 노래지고 갑자기 눈에 뵈는게 없어집니다.
배낭을 풀고 앉았습니다. 배낭에서 드림카카오75를 꺼내 입안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한 열알 넣었습니다. 조금 정신이 듭니다.
그때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던 아리따운 아가씨 두분이 지나갑니다.
그 와중에도 드림카카오75를 내밉니다. 드시라고...헥헥거리면서...

이미 일행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발 좀 쉬고 있으라고.. 그만 가라고 기도를 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길이란 때론 되돌아갈때도 안되면 옆으로 샐때도 있습니다.
근데 이놈의 둘레길은 한번 들어서니 되돌아가기도 옆으로 샐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전진입니다.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둘레길의 로드맵!ㅋ

대박 쉼터

코스를 꼼꼼히도 적어왔네



온갖 생각이 다 들때쯤 일행이 보입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사색이 되어 털썩 주저앉아 외쳤습니다.
"먹을거 있으면 다 줘요!!!!!!!!" 라고.....
얼마나 애절하게 보였으면 쉼터의 주인께서 저에게 빵한개를 건네주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분이 쵸코파이 한개... 제돈 주고 산 음료수 한개.

그날밤 다른 일행은 4코스 중간까지 걷고
나와 발에 물집이 잡힌 친구는 버스를 타고 새동마을 민박까지 갔습니다.
근데 닭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동네입니다. 간단히 한잔하고 각자 숙소로 갔습니다.
정신없이 잠을 잤습니다.

드디어 3일째 아침.
나와 친구는 작별을 합니다.
수철마을에서 해단식을 하자는 걸 마다하고 과감히 작별을 합니다.
하지만 포기는 아닙니다. 
왜냐면 이건 애초 계약이 잘못된 겁니다.
저는 등산을 온게 아니거든요. 저는 둘레길을 걸으로 왔지 지리산 등산을 온게 아니니까요.
이건 애초 계약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버스를 타고 함양읍에 가서 창원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면서도 걷지 않고 그냥 오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쨋날 숙소. 펜션이입니다.

닭은 아니어도 좋아.

함양읍 가는 마을버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며칠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마 영원히 기억할 것 같네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길위의 웃음들이 저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고행을 마다않고 달려오는 수많은 젊은이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제가 저 친구들 나이때는 저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정말 다들 고마워요. 둘레길도 그리고 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하지만 저는 다시는 둘레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등산유전자가 없거든요.


Posted by housek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