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4년의 시간은 나에게는 정말 피말리는 시간이었다.
이 4년의 시간은 바로 "조용한 남자" 때문이었다.
"조용한 남자"와 울고 웃던 4년은 솔직히 유쾌하진 않았다.

하루에 수십번의 감정변화를 느껴보았는가?
난 느껴보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잘 될꺼야를 수십번 되뇌이고
급기야 도망가서 쳐다도 보지 않고 그러기를 근 4년.

직장을 잘 다니던 2007년 영화를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난 독립영화를 찍는 사람들?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돈도 안되고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그리도 미친듯이 그러는지...
이 시기에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가끔 밥사주고 후원금 내주고..
여느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시나리오? 힘들게 썼다. 얼마나 힘드냐면 살이 쪽쪽 빠지는걸 경험했다.
두통도 장난 아니다.
그렇게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주변 지인들에게 돌렸는데..
다들 말이 없었다.
난 그 분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과감히 시작했다.
먼저 조연출을 구했다.
박우람이라고 친구의 꾐에 빠져 부산에서 끌려온 동서대 학생이었다.
말로서 구워 삶았다. 엄청난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
말은 거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도 모자랄영화였다.
딱 두달만 고생하자고. 그렇게 우람이는 조연출이 되었다.

그리고 장소를 구해야했다.
왠만하면 번듯? 한곳을 구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꽃들에게 사무실에 슬그머니 책상을 하나 놓았다. 설미정샘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그리고 나의 자격을 설명했다. 난 꽃들에게 희망을의 희망지기다. 
그리고 설미정 샘이 없을때 사무실을 지키겠다고...쌀도 퍼주고 배달도 해 주겠다고...
그렇게 책상하나를 놓고서 영화만들기 작업을 들어갔다.

돈이 없었다.
고민끝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원의 후원자를 모시는 것이었다.
만원의 후원자 용지를 만들어서 주변분들에게 제안을 했다. 만약 약간의 후원금을 주신다면 영화 엔딩 크레딧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드리겠다고....물론 만원을 주신분도 계시고 더 많은 후원금을 주신분도 계신다. 그리고 이분들은 엔딩크레딧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셨다.
정말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확인해 보시고 만약 이름이 없으시면 저에게 항의를...;;;)

제작지원..이게이게 또 재미있다.
다른 영화들처럼 크게 한방에 제작지원을 해주면 좋겠지만
누가 선뜻 거금을 내 놓겠는가? "조용한 남자"에게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 제작지원의 근거이다.

제작지원1-꽃들에게 희망을... 장소와 각종 편의를 봐 주셨다. 맨날 우리 팀들이 북적북적해도...
아예 나중에는 우리 사무실인것처럼 사용해도 군말없이...
그리고 감독이 꽃들 희망지기라고 소식지까지 자랑하셔서 
우리 희망지기중에서도 만원의 후원자가 많이 계신다. 그리고 저를 정말 좋아한다.
어제는 우리 꽃들 떡국먹는날이었다. 나도 참석하고 싶었지만 부산에서 막바지 변환작업때문에
결국 참석못했다. 모두 나를 찾고 난리였다고 한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제작지원2-극단나비..... 영화의 주된 촬영공간이다. 그리고 뒤에 소개를 하겠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형이고 선배이고 태양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것을 내어 주셨다. 
물론 돈이 없으셔서 돈만 빼고..
눈물나게도 극장시사전 기자 블로거시사는 이곳에서 한다. 감회가 새롭다.
제작지원3-경남영화협회....물론 여기도 돈이 없다. 하지만 돈보다도 더 많은 걸 주셨다.
그래서 난 당당히 제작지원에 이름을 넣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작년 없는 돈에서도 메세나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주셨다. 이걸 안주었어도 제작지원이었다.
제작지원4-상남굿모닝내과병원.... 경남영화협회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시사회도 원장님이 없었으면
힘들었을것이다.
제작지원5-경남메세나협의회.....메세나 협약을 한 곳이다. 
제작지원6-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촬영할때 몇가지 장비를 지원받았다. 물론 무료로....
제작지원7-부산대학교 첨단영상교육센터...이곳은 애플공인교육센터이다.  "조용한 남자"는 맥켄토시로 작업을 했다. 이곳 교수님께 무작정 찾아가 색보정작업과 마무리를 부탁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작업을
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귀찮게 해드렸다. 다음작품은 기획단계부터 같이 하자고 하신다.

이 외에도 경남연극협회와 극단객석과 무대, 극단마산, 극단미소, 극단벅수골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 지역의 연극배우들이 앞다퉈 출연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특히 우리 주인공 규성씨는 근 2달이 넘는 촬영동안 극단일도 못하고... 
상철선배님과 승규선배님, 대표님 고맙고 죄송합니다.
극단미소는 사무실과 배우들... 그리고 대표님까지 출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극단마산도 주요배역이 있는 덕분에 스켜쥴맞춰준다고 고생하셨고요. 고마워요 성봉씨.
극단객석과 무대는 의상까지 무료로 빌려주고....감사합니다. 연출님.

그리고 경남지역의 영화의 산증인이신 마산문화원 영화박물관 관장님이신
이승기 선생님.
손수 출연까지 해주시고..물심양면으로 홍보에 때되면 영화어떻게 되가냐며 물어주셔서
저조차도 까먹고 있던 영화에 대한 기억을 남겨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정말정말 고마운 분이다.
 설미정 샘... 나의 여자친구이지만 항상 어려운 사람이다. 
이사람이 없었다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 팀들은 나보다 설샘을 더 좋아했다.
왜? 난 굶기고 설샘은 먹을걸 주니까... 사랑합니다.^^
김동원연출님... 후배인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없이 소극장을 제공하고 기꺼이 세트도 만들어주고
연기지도에 엑스트라까지... 이분이 극단나비의 대표님이다.
정말 정말 고마운 두분이다.

우리 조연출 우람이는 두말하면 잔소리... 이 친구는 나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그 외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만 이만 나중에 개인적으로 인사를 건네고자 한다.

이제 영화는 완성되었다.
어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 가서 마지막 HDV테이프로 녹화끝냈을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자료들은 부산대학교 첨단영상교육센터에 있다.
또 부탁할 일이 생길것 같아 모르는척 조금더 둬야겠다.

난 악질고용주다.
나의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정말정말 미안했다.
어떤 것도 그들의 수고에는 보상이 안되겠지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은 
그들에게 정말 기억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안타깝다. 
내가 아무리 우리의 작품을 칭찬하고 좋아한들
이제 이 작품은 우리의 능력밖에서 혼자 움직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박수를 보내겠지만 어떤 이들은 비웃음을 보낼것이다.

독립영화는 독립군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독립군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영화 "조용한 남자"는 독립영화다.
그걸 부정하는건 아니다.
만듬새가 어설프기도..연기가 어색하기도... 기술이 미흡해서 많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의 영화 "조용한 남자" 는 

우리 지역의 첫 장편영화가 아니다.

우리 또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이 작품을 완성했을 뿐이고 우리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작품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시사를 하게 될 것이다.

"조용한 남자"가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지역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를 상영할 공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곳에서 상영이 되어지길 기대한다.

초보감독이기에...
그리고 우리의 첫 시사회이기에.....
영화도 시사회도 어설플 것이다.
그래도 너무 많은 질타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한다.
최소한 우린 그만큼 고생했고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기에...
우린 자라나는 새싹이니까.....

마지막으로 이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있었다.
일일이 거론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만약 빠진 분이 계시다면 그건 너무 죄송하니까..
이 글을 정말 관심있게 보시고 웃으시는 당신이...

저에겐 은인이십니다.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 감독 김재한



Posted by housekeeper
우연히 찾은 부산 자갈치에 이색적인 풍경이 목격되었다.
부산국제 영화제도 끝나고 그다지 조용하게 찾은 남포동에 왠 일본 사람들이 뭘 준비하는 듯 했다.


















우리 나라에서 무슨 짓(?)을 하는거야??-_-;;
하지만 우리나라 경찰도 보이고 팜플렛을 보니 부산시에서 허가는 한것 같았다.


(왼쪽 두번째 보니 '한국관광공사' 라고 쓰여 있고 오른쪽에는 '한국부산특별군행(?)'이라고 쓰여 있다)

뭐.. 시간도 많은데 구경해야지.ㅋㅋ 그런데 대체 이건 뭘까?? 우리때는 한자교육을 중학교 까지 배워서 한자를 잘 모른다.^^;; 그냥 중국어를 공부해서 쪼~~~~금 알 뿐이다.ㅎㅎ


(뭔 소린지 몰라서 그냥 사진을 찍었다..ㅋㅋ)

일단은 이해가 되는건 일본전통 축제이고 30년 만에 처음으로 해외 퍼레이드라는거....

하여간 처음은 자갈치의 역사와 이런 저런 것들이 행진을 시작했다.


(일단은 여자 군악대가 잴 맘에 듬.ㅋㅋ)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난온사람들에 의해 자갈치시장이 활성화 되었고, 지금 여러 상인연합회가 생겨 이렇게 번영이 되었다라는 뜻 인것 같다..

그리고 가장 마지막 행군은..

의쌰~! 의쌰~!  일본 행군...

아직까지 뭐 그다지 감동은 없었다. 그냥 저거 하러 한국까지 200여명이나 왔나 정도 였다.

하지만 퍼포먼스는 지금 부터....

(폰으로 찍은 건데 바로 찍으니까 옆으로 나오네요..죄송..^^;;)
 
저 탑을 분해 하기 시작하더니...



12층의 등으로 된 답을 올리고 있었다..

정말로 놀라웠다. 10분 정도의 시간에 등으로 된 답을 쌓는 것도 있지만.... 한국 사람들이 모두 박수를 쳐 주고 있었다..
그것도 부산 남포동 가장 번화가에서 일본인들의 기념행사 처럼 탑을 쌓고 있는데..

잠깐만 생각해 보자.......

모르는 사람은 일본이 한국에 2번 쳐들어 온 줄 안다...
임진왜란과 일제침략기..

그런데 부산은 일본에 의해 수천만번 침략을 받았고 수 많은 사람들이 납치되어 갔으며, 셀수 없는 사람들이 죽었다.
한마디로 하면 일본의 침략에 가장 피해를 크게 본 지역이라는 말이다.
역사를 생각하면 일본을 가장 싫어 해야할 지역이 부산일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부산은 어디를 가도 일본 글을 찾을 수 있고, 일본 사람을 만날 수도 있다..
그리고 별 이상하게 느끼지도 않는다.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외국에서 이런 경우가 있나???

난 중국의 연길이라는 곳에서 잠시 생활을 했었는데, 연길시의 대부분이 한국과의 무역과 그에 관련된사람이 살아가지만 월드컵 길거리응원은 꿈도 못꾸고, 결국 한국인고등학교 체육관에서 봤다. 다른 뜻이 아니라 중국이라는 길거리에서 한국문화의 퍼포먼스를 시민이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었다. (내가 아는건 중국밖에 없다.^^;; 다른 나라는 저도 몰라요~)

난 일본인의 거리 퍼포먼스를 대단하게 느낀것이 아니라, 그것을 박수쳐 주고, 사진을 찍으며, 함께 즐기는 한국 사람에 대단함을 느꼈다. (내가 안보는 사이에 누군가 계란이라도 던졌을 라나?ㅋㅋㅋㅋ)

일단 나도 계란을 던진다던가, 야유를 하지는 않았다.. 그냥 호응의 박수 정도.ㅎㅎㅎ


마지막으로 시민들에게 나누어 주던 선물...

큰 누님들께서 잘 받으셔서 결국 나는 김 한개 겨우 건졌다.ㅋㅋㅋ
(그런데 잘 보면... 완도산이라도 적혀 있다.ㅋㅋㅋ)

내일 아침 밥 반찬 해야지.ㅋㅋ

Posted by 영길이~!
지리산 둘레길 들어보셨죠?
며칠전 친구와 거길 다녀왔습니다.

어렸을때 친구들과 비둘기호, 통일호를 타고 젊음을 불사르던 낭만을 느껴보고파서
창원에서 타면 가장 멀리, 가장 긴 시간을 간다는 목포로 무궁화호를 타고 갈 계획을 세웠다가
1박2일을 보고 조금 고민을 하다가 그냥 지리산 둘레길로 정했습니다.

보기엔 좋데요. 지리산 둘레길.
사실 전 둘레길이라고 해서 둘레만 도는 길인줄 알았습니다.
만약 등산이었다면 전 과감히 포기했을 겁니다.

저는 아마 등산유전자가 선천적으로 없거나 부족한것 같습니다.
오르막길, 내리막길은 싫습니다. 끔찍할 정도로...

창원종합버스터미널에서 출발



금요일 오전에 느지막히 일어나서 대충 물한잔 마시고 오이를 사들고 창원버스터미널로 고고고.
진주에서 타신 두분은 저희처럼 배낭을 맨 젊은여성. 그리고 또 한분은 배낭맨 젊은 남성.

저희는 2코스가 시작하는 운봉에서 내렸습니다.
이때 시각이 4시가 넘었습니다. 2코스는 6시간이라고 나와있어내일부터 시작할까하다 읍사무에
들어가 물어보니 
걸어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답변을 듣고 출발.

운봉읍사무소입니다.

아주 낭만적인 2코스의 시작

둘레길 표지목.



거울속의 나와 친구



2코스는 출발부터 3/2지점까진 평지라 정말 즐겁게 걸었네요.
물론산길도있었지만 첫날에다 힘이 남아있어 그닥 문제될건 없었거든요.
런저런 이야길 하며 첫날 어둑어둑해질때쯤 인월에 도착했습니다.

정말 멋진 청년이죠?



길은 사람과 사람을 아주 자연스레 이어주는 소개꾼이네요.
첫날 걸으며 좋은 두분을 만났습니다.
기약없이 서울에서 아침에 버스타고 내려온 아리따운 여성과 기차타고 내려온 건실한 젊은이.

이 젊은이는 이후 내내 저희와 함께 길을 걸었습니다.

저희는 술익는 집이라는 민박집에서 하루 유했습니다.
늙으신 노부부가 운영하는 집인데 방에 딱 들어선 순간 아!!
꼭 우리집같습니다. 텔레비젼이며 가구들이 우리집과 비슷합니다.
 다음날 아침 식사를 차려 주시는데 집에서 먹는 밥과 똑같습니다.
일단 식당밥이 아닙니다.  두분이서 잡수시는 밥에 양만 조금더 했습니다.
머슴밥을 먹고 일단 집을 나섭니다.

이 세상의 천국이 여기!

저 멀리 지리산이...

길위의 친구들



둘레길 둘쨋날.
뭐든 두번째, 2, 이틀...
조심해야합니다.
각오를 단단히 합니다.
제일 힘들다는 3코스.
그래도 길인데.... 라는 생각에 당당히 한발 한발 내딛습니다.
가다 갈림길입니다. 한쪽은 조금 쉬워보이고 다른 한쪽은 산으로 가는 길 같습니다.
잠깐 고민을 하다 사람이 다니는 길인데~ 라는 생각에 산으로 가는 길을 갑니다.
사실 우리 바로 앞에 연인이 가고 있는데 이분들이 밑에 있는 길로 갔거든요.
뭐 객기였습니다. 밑의 길은 너무 쉬워 보일거라는 생각에...아주 엄청난 착각을 한거죠.

죽도록 힘듭니다. 가도가도 계속 오르막입니다.
숨이 턱을 턱턱 칩니다. 이건 아니야 를 수백번 외칩니다. 애궂은 친구랑 동행만 탓합니다.
계속 저주할거야~ 이러면서......

오르고 또 오르고

이 죽일놈의 오르막

와 많다!!



어찌어찌 앞으로 나아가 집니다. 그래도 한번 시작했으니 포기는 못하겠더라구요.
길에서 또다른 인연을 만납니다.
어제의 그 아가씨와 중년부부.
아저씨께서 저녁에 닭을 사주신답니다. 아싸.... 힘내서 열심히 걷습니다.
그러나 이 약발도 10분을 못넘기네요. 죽을 것 같습니다. 
두번다시 둘레길을 오지 않으리라 다짐 또 다짐을 합니다.
이건 길이 아니야~~~~~~~~~~~~~~~~아~~~~~악~~~~~ 헥헥!!!
계속 외칩니다. 때론 속으로... 때론 밖으로 드러내서....

등구재는 어찌어찌 넘었습니다. 이제는 끝이라고 합니다.
전라도에서 경상도로 이미 넘어왔습니다. 창원마을이 앞입니다.
같은 창원이라고 우리 동네라며 농담도 하며 걷습니다.

잘 가다가 갑자기 오르막이 보입니다.
설마 합니다. 에이 설마.....
침을 꼴깍 삼키고 조심조심 갑니다.
이런.... 정말 오르막입니다... 
그래도 그 힘들다는 깔딱고개도 넘었는데..... 
아닙니다. 깔딱 고개는 거기가 아닌 여깁니다.
결국 당이 부족해지고 하늘이 노래지고 갑자기 눈에 뵈는게 없어집니다.
배낭을 풀고 앉았습니다. 배낭에서 드림카카오75를 꺼내 입안으로 쑤셔 넣었습니다.
한 열알 넣었습니다. 조금 정신이 듭니다.
그때 앞서거니 뒷서거니 걷던 아리따운 아가씨 두분이 지나갑니다.
그 와중에도 드림카카오75를 내밉니다. 드시라고...헥헥거리면서...

이미 일행은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제발 좀 쉬고 있으라고.. 그만 가라고 기도를 합니다.
다리가 후들거리고 정신이 아득해 집니다.

길이란 때론 되돌아갈때도 안되면 옆으로 샐때도 있습니다.
근데 이놈의 둘레길은 한번 들어서니 되돌아가기도 옆으로 샐수도 없습니다.
무조건 전진입니다. 여기가 군대도 아니고....

둘레길의 로드맵!ㅋ

대박 쉼터

코스를 꼼꼼히도 적어왔네



온갖 생각이 다 들때쯤 일행이 보입니다. 눈물이 날 정도로 반가웠습니다.
사색이 되어 털썩 주저앉아 외쳤습니다.
"먹을거 있으면 다 줘요!!!!!!!!" 라고.....
얼마나 애절하게 보였으면 쉼터의 주인께서 저에게 빵한개를 건네주십니다.
그리고 그 옆에 계신분이 쵸코파이 한개... 제돈 주고 산 음료수 한개.

그날밤 다른 일행은 4코스 중간까지 걷고
나와 발에 물집이 잡힌 친구는 버스를 타고 새동마을 민박까지 갔습니다.
근데 닭이 없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동네입니다. 간단히 한잔하고 각자 숙소로 갔습니다.
정신없이 잠을 잤습니다.

드디어 3일째 아침.
나와 친구는 작별을 합니다.
수철마을에서 해단식을 하자는 걸 마다하고 과감히 작별을 합니다.
하지만 포기는 아닙니다. 
왜냐면 이건 애초 계약이 잘못된 겁니다.
저는 등산을 온게 아니거든요. 저는 둘레길을 걸으로 왔지 지리산 등산을 온게 아니니까요.
이건 애초 계약에 없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을버스를 타고 함양읍에 가서 창원오는 버스를 타고 집으로 왔습니다.
오면서도 걷지 않고 그냥 오길 백번 잘했다는 생각이 듭니다.

둘쨋날 숙소. 펜션이입니다.

닭은 아니어도 좋아.

함양읍 가는 마을버스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며칠되지 않은 시간이지만 아마 영원히 기억할 것 같네요.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과 길위의 웃음들이 저에게는 정말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이런 힘든 고행을 마다않고 달려오는 수많은 젊은이들로 인해 우리나라의 미래를 보았습니다.
제가 저 친구들 나이때는 저런 생각을 못했거든요. 
정말 다들 고마워요. 둘레길도 그리고 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하지만 저는 다시는 둘레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등산유전자가 없거든요.


Posted by housek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