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기적인 그녀와 나 - 이미 습관이 되어버렸다.
                                                                                       김 재한
며칠 전부터 그녀가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다닌다.
의자 200개를 나르고 긴 테이블 40개도 번쩍 든다고 하더니, 급기야 막걸리를 사러 동읍까지 갔다 왔단다.
날 만날 때도 여전히 수첩에 코를 막거나 A4용지에 적인 일정표를 끊임없이 점검하고 있다. 그 좋아하던 술도 잠시 거른 채..
200그릇의 소고기국을 만들기 위해 동분서주 하더니 ‘광우병 소고기 파동’ 때문에 국을 지원못한다고 큰 음식점에서 막판에 뒤집었다고 씩씩거리더니
조용히 휴대폰을 들고 밖으로 나간다.
잠시 후 “소고기국 200인분 해결”이라는 말을 전하면서 경로잔치가 급물살을 탔다. 난 그저 옆에서 그녀가 열 받는 모습을 지켜봐주고, 아침부터 이것저것 옮기느라 지친 그녀를 태우러 갈뿐 그녀의 일을 대신 해줄 수는 없다, 물론 시원한 맥주캔을 따주는 것은 나의 일이지만..

그날이 왔다. 토요일이라 나는 오전 근무를 위해 출근을 했고, 그녀는 아침일찍 사무실로 나갔다. 사파동 경로당 앞 공원에 테이블과 의자들이 줄을 서고, 즉석 부침개를 위한 불판이 설치되고 소고기국을 위해 가마솥이 걸렸다. 이외에도 각종 음식들을 위한 가판이 설치되었다.
나는 습관처럼 출근하기 전 거동이 불편하시거나 먼 곳에서 오시는 어르신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차량봉사를 한 후 회사에 출근했다. 근데 나의 그녀는 고맙다는 말을 꺼내지고 않고, 빨리빨리 움직이지 않는다고 채근한다.

‘아, 인생이 이상하게 꼬여간다.’
사무실에 출근해서도 연방 시계만 보고 있다. ‘이 시간쯤이면 이것을 하고 있을 거야, 음, 이제는 이걸 할 시간이군’ 하면서 퇴근 시간을 기다린다.
‘아, 이상하다. 행사장에 가면 또 노가다인생인데.’
퇴근시간, 점심도 거른 채 행사장으로 날아왔다. 여전히 그녀는 고맙다 혹은 이제 오냐는 표현조차 없다. 약간 마음 상한다. 그래도 나는 최선을 다해 점심도 안 먹고 도와줄려고 왔는데.
주위에서 한소리씩 한다. “아니, 퇴근하고 오시는 거예요?, 점심은요?”
나는 행사 끝자락이라 이리저리 정리하러 뛰어다니며 “예, 점심은 아직 못 먹었어요, 여기 빨리 와야지 마음이 편하지요. 이제 습관이에요.”라고 말했다. 아~ 정말 습관이 되어버렸다. 그녀를 만난 후 자연스레 봉사활동을 하게 되었는데 어느 순간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봉사활동을 강제하거나 선전 혹은 후원자까지 모우고 있다. 참, 나와 동병상련인 친구가 있다. 대학4년이라 취직공부로 바쁜데 큰일이 있을 때마다 꼼짝없이 불려나온다. 무거운 물건을 옮기고 자원봉사자들과 가득 싸인 설거지를 한다. 이 시간 나의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는 어르신들의 손을 잡고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 이삼십분 넘어 어르신들은 행사장을 떠나셨고 그녀는 먹거리를 준비하신 봉사자들에게 향한다. 앗! 남아있는 막걸리를 권하고 있다. 젊은 친구들은 영차영차 땀을 흘리며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그녀는 천연덕스럽게 한명 한명에게 술을 권한다.

물건 옮기는 대학생을 불러서 한잔 권하고 안주까지 먹여준다. 빨리빨리 하고 쉬고 싶은데, 그녀는 개긴다. 너무 느긋하다. 아마도 술향기에 빠졌나보다. 에고, 어쩌다가 내가 여기까지 온 것일까?

나의 그녀는 술을 너무너무 사랑한다. 완전 애주가이다.
이런 그녀의 영향으로 나는 술을 단 한잔도 마시기 않는다. 절대로, 네버.
술에 취한 그녀, 그리고 가난하고 외로운 이웃들과 아이들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는 그녀, 중국학을 한다고 고민하고 고민하면서 대학원 공부를 하고 있는 그녀, 그리고 나랑 연애하면서 한번도 같이 여행간 적이 없는데 매년 배낭을 짊어지고 청소년을 이끌고 중국 오지로 나가는 그녀, 희망지기에게는 부드럽고 열정적이며 곧잘 감사함도 표현하는데 나에게는 유독 덤덤한 그녀, 어쩌다가 여기까지 왔을까?

애인과 술 중 당연히 술을 택하고, 애인과 친구 중 당연히 결정할 수 없다며 갈등을 하는 그녀를 7년째 연인이란 이름으로 만나고 있다.
서서히 길들어지는 것일까? 주말이나 주일에도 쌀을 싣고 어르신들의 집에 갈 때도 있다. 혹은 중국어 통역으로 이주여성 부부싸움 중재를 하기도 하고, 하다보면 내가 부부싸움 현장에 가있다.
그녀랑 있으면 안식이나 편안함이 없다.
그래서 간혹 있는 ‘별일 없음’이 무진장 행복하다.
옆에서 그녀가 그런다.
“나, 맥주 한잔 만”

Posted by housek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