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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1.02.19 초보 감독의 "조용한 남자" 장편독립영화 제작기
근 4년의 시간은 나에게는 정말 피말리는 시간이었다.
이 4년의 시간은 바로 "조용한 남자" 때문이었다.
"조용한 남자"와 울고 웃던 4년은 솔직히 유쾌하진 않았다.

하루에 수십번의 감정변화를 느껴보았는가?
난 느껴보았다.
과연 내가 할 수 있을까 부터 시작해서 잘 될꺼야를 수십번 되뇌이고
급기야 도망가서 쳐다도 보지 않고 그러기를 근 4년.

직장을 잘 다니던 2007년 영화를 찍기로 마음을 먹었다.
솔직히 난 독립영화를 찍는 사람들?
이해하기 힘들었다. 왜 돈도 안되고 
자기 돈을 들여가면서 그리도 미친듯이 그러는지...
이 시기에 나는 직장을 다니고 있었고
안정된 월급을 받으며 가끔 밥사주고 후원금 내주고..
여느 일반인과 다름없었다.

그러나 어찌되었던 영화를 찍기로 결심했다.

시나리오? 힘들게 썼다. 얼마나 힘드냐면 살이 쪽쪽 빠지는걸 경험했다.
두통도 장난 아니다.
그렇게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주변 지인들에게 돌렸는데..
다들 말이 없었다.
난 그 분들이 보는 눈이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과감히 시작했다.
먼저 조연출을 구했다.
박우람이라고 친구의 꾐에 빠져 부산에서 끌려온 동서대 학생이었다.
말로서 구워 삶았다. 엄청난 작품이 탄생할 거라고...
말은 거의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아도 모자랄영화였다.
딱 두달만 고생하자고. 그렇게 우람이는 조연출이 되었다.

그리고 장소를 구해야했다.
왠만하면 번듯? 한곳을 구하고 싶었으나 돈이 없었다.
꽃들에게 사무실에 슬그머니 책상을 하나 놓았다. 설미정샘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그리고 나의 자격을 설명했다. 난 꽃들에게 희망을의 희망지기다. 
그리고 설미정 샘이 없을때 사무실을 지키겠다고...쌀도 퍼주고 배달도 해 주겠다고...
그렇게 책상하나를 놓고서 영화만들기 작업을 들어갔다.

돈이 없었다.
고민끝에 한가지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만원의 후원자를 모시는 것이었다.
만원의 후원자 용지를 만들어서 주변분들에게 제안을 했다. 만약 약간의 후원금을 주신다면 영화 엔딩 크레딧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 드리겠다고....물론 만원을 주신분도 계시고 더 많은 후원금을 주신분도 계신다. 그리고 이분들은 엔딩크레딧에 당당히 이름을 올려셨다.
정말 정말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다.(확인해 보시고 만약 이름이 없으시면 저에게 항의를...;;;)

제작지원..이게이게 또 재미있다.
다른 영화들처럼 크게 한방에 제작지원을 해주면 좋겠지만
누가 선뜻 거금을 내 놓겠는가? "조용한 남자"에게는 돈이 아니라 마음이 제작지원의 근거이다.

제작지원1-꽃들에게 희망을... 장소와 각종 편의를 봐 주셨다. 맨날 우리 팀들이 북적북적해도...
아예 나중에는 우리 사무실인것처럼 사용해도 군말없이...
그리고 감독이 꽃들 희망지기라고 소식지까지 자랑하셔서 
우리 희망지기중에서도 만원의 후원자가 많이 계신다. 그리고 저를 정말 좋아한다.
어제는 우리 꽃들 떡국먹는날이었다. 나도 참석하고 싶었지만 부산에서 막바지 변환작업때문에
결국 참석못했다. 모두 나를 찾고 난리였다고 한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야^^
제작지원2-극단나비..... 영화의 주된 촬영공간이다. 그리고 뒤에 소개를 하겠지만
내가 정말 좋아하는 형이고 선배이고 태양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모든것을 내어 주셨다. 
물론 돈이 없으셔서 돈만 빼고..
눈물나게도 극장시사전 기자 블로거시사는 이곳에서 한다. 감회가 새롭다.
제작지원3-경남영화협회....물론 여기도 돈이 없다. 하지만 돈보다도 더 많은 걸 주셨다.
그래서 난 당당히 제작지원에 이름을 넣어야한다고 생각했다. 
실제 작년 없는 돈에서도 메세나에서 지원하는 지원금을 주셨다. 이걸 안주었어도 제작지원이었다.
제작지원4-상남굿모닝내과병원.... 경남영화협회의 든든한 후원자이다. 시사회도 원장님이 없었으면
힘들었을것이다.
제작지원5-경남메세나협의회.....메세나 협약을 한 곳이다. 
제작지원6-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 촬영할때 몇가지 장비를 지원받았다. 물론 무료로....
제작지원7-부산대학교 첨단영상교육센터...이곳은 애플공인교육센터이다.  "조용한 남자"는 맥켄토시로 작업을 했다. 이곳 교수님께 무작정 찾아가 색보정작업과 마무리를 부탁했다. 정말 말도 안되는 금액으로 작업을
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까지 귀찮게 해드렸다. 다음작품은 기획단계부터 같이 하자고 하신다.

이 외에도 경남연극협회와 극단객석과 무대, 극단마산, 극단미소, 극단벅수골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다.
그리고 우리 지역의 연극배우들이 앞다퉈 출연해 주셔서 정말 고마웠다.
특히 우리 주인공 규성씨는 근 2달이 넘는 촬영동안 극단일도 못하고... 
상철선배님과 승규선배님, 대표님 고맙고 죄송합니다.
극단미소는 사무실과 배우들... 그리고 대표님까지 출연해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극단마산도 주요배역이 있는 덕분에 스켜쥴맞춰준다고 고생하셨고요. 고마워요 성봉씨.
극단객석과 무대는 의상까지 무료로 빌려주고....감사합니다. 연출님.

그리고 경남지역의 영화의 산증인이신 마산문화원 영화박물관 관장님이신
이승기 선생님.
손수 출연까지 해주시고..물심양면으로 홍보에 때되면 영화어떻게 되가냐며 물어주셔서
저조차도 까먹고 있던 영화에 대한 기억을 남겨 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리고 정말정말 고마운 분이다.
 설미정 샘... 나의 여자친구이지만 항상 어려운 사람이다. 
이사람이 없었다면 영화는 완성되지 못했을 것이다. 솔직히 우리 팀들은 나보다 설샘을 더 좋아했다.
왜? 난 굶기고 설샘은 먹을걸 주니까... 사랑합니다.^^
김동원연출님... 후배인 나에게 싫은 소리 한번 없이 소극장을 제공하고 기꺼이 세트도 만들어주고
연기지도에 엑스트라까지... 이분이 극단나비의 대표님이다.
정말 정말 고마운 두분이다.

우리 조연출 우람이는 두말하면 잔소리... 이 친구는 나의 든든한 파트너였다.

그 외 일일이 거론하고 싶지만 이만 나중에 개인적으로 인사를 건네고자 한다.

이제 영화는 완성되었다.
어제 부산시청자미디어센터에 가서 마지막 HDV테이프로 녹화끝냈을때는 다리가 후들거렸다.
하지만 아직도 나의 자료들은 부산대학교 첨단영상교육센터에 있다.
또 부탁할 일이 생길것 같아 모르는척 조금더 둬야겠다.

난 악질고용주다.
나의 스텝들과 배우들에게 정당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그들의 노동력을 착취했다. 정말정말 미안했다.
어떤 것도 그들의 수고에는 보상이 안되겠지만 내가 할수 있는 최선은 
그들에게 정말 기억할 만한 작품을 만들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낀다.
그리고 안타깝다. 
내가 아무리 우리의 작품을 칭찬하고 좋아한들
이제 이 작품은 우리의 능력밖에서 혼자 움직일 것이다.
어떤 이들은 박수를 보내겠지만 어떤 이들은 비웃음을 보낼것이다.

독립영화는 독립군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
나 또한 독립군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영화 "조용한 남자"는 독립영화다.
그걸 부정하는건 아니다.
만듬새가 어설프기도..연기가 어색하기도... 기술이 미흡해서 많이 부족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진정성을 알아줬으면 한다.

우리의 영화 "조용한 남자" 는 

우리 지역의 첫 장편영화가 아니다.

우리 또한 선배들의 뒤를 이어 이 작품을 완성했을 뿐이고 우리의 뒤를 이어
또 다른 작품이 만들어지고 이렇게 시사를 하게 될 것이다.

"조용한 남자"가 그 밑거름이 되었으면 한다.
그래서 더 많은 분들이 지역에서도 영화가 만들어지고
영화를 상영할 공간이 필요하고 더 많은 곳에서 상영이 되어지길 기대한다.

초보감독이기에...
그리고 우리의 첫 시사회이기에.....
영화도 시사회도 어설플 것이다.
그래도 너무 많은 질타보다는 따뜻한 말 한마디를 원한다.
최소한 우린 그만큼 고생했고 열심히 했다고 자부하기에...
우린 자라나는 새싹이니까.....

마지막으로 이작품이 만들어지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있었다.
일일이 거론하기엔 위험 부담이 너무 크다.
만약 빠진 분이 계시다면 그건 너무 죄송하니까..
이 글을 정말 관심있게 보시고 웃으시는 당신이...

저에겐 은인이십니다.

                                독립영화 '조용한 남자' 감독 김재한



Posted by housekeep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