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남자>

― 경계선의 울림과 틈새 ―

 

HDV 103분 시사회 2011년 3월 3일 메가박스창원
각본/연출:김재한

 

부산대 영화연구소 전임연구원 강 성 한

 


  영화 <조용한 남자>의 주인공은 몸이 아프다. 그래서 후배가 걱정을 한다. “형! 병원이라도 함 가보자. 그리고 내가 옷을 가져왔으니까 옷도 갈아입고 병원에 가 보자”. 소극장 무대의 바닥에 아무렇게나 너부러진 이불 사이로 헝커러진 머리칼만 보인다. “괜찮따. 마, 한숨 자고나면 된다. 내가 알아서 한다안카나”. 시작의 오랜 암전처럼 암전이 다시 찾아들고 메인타이틀 떠오른다.

‘조용함과 외침’은 직선의 양 끝에 자리 잡고 있으면서 항상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 죽음을 기억할 때 우리는 늘 삶을 그리워하듯이, 사랑을 말할 때도 역시 우리는 증오와 고독을 발견하듯이 그렇게 영화 <조용한 남자>는 관객에게 소리 없는 ‘외침’을 보여주는 듯하다.

1. 공간에 갇힌 흔적(index)

 

 <조용한 남자>는 두 개의 플롯라인과 두 개의 인과율을 보여준다. 한 편의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인공 상호, 하지만 연출가인 그를 좌절하게 만드는 것은 늘 부족한 제작비용이다. 그리고 그것은 그림자처럼 그의 삶을 짓누른다. 두 번째 플롯라인은 그의 가족과의 관계이다. 한 가족의 장남으로서, 그리고 남편으로서의 주인공은 무기력한 존재이다. 아내의 든든한 버팀목과 연로하신 부모님의 자랑스러운 맏아들로서 처신할 수 없는 그는 언제나 조용하다. 남편과 아들의 기표가 표류하는 가운데 스토리는 서로 얽히고설킨다.

“나 낼부터 식당 알바라도 구해야겠다. 지금 일하는 곳은 곧 문을 닫는다는데” 아내의 목소리는 방한 칸 부엌한 칸의 궁색한 공간속에 자리 잡는다. 이 작품은 주로 3-5분 내외의 롱테이크long take가 장면화mise-en-scene를 이루고 있다. 주인공 상호의 좁은 공간은 부엌과 방을 가로 지르는 문지방으로, 부엌과 화장실의 문지방으로, 가구들 너머의 출입문의 문지방으로, 프레인frame속의 프레임으로 분할되어 힘들어 하는 부인과 그의 모습을 더욱 작아보이게 만든다. 방한가운데 자리 잡은 개나리 밥상위의 노트북, 또한 좁은 방바닥을 분할시키는데 한몫을 한다.

롱테이크의 기법은 공간의 문지방을 통해 경계에 주목하라고 말한다. 부부의 모습이 바로 경계인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만인의 축복을 잠시(?) 보류한 동거형태의 결혼생활을 하고 있다. 드레스를 입어 보지 못한 아내는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남편의 욕망(?)으로 힘들어한다. 역시 주인공 상호는 후배, 선배. 동료, 친동생, 그리고 몸이 아픈 어머니에게 조차도 걱정을 끼치는 이방인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또한 롱테이크는 프레임을 창문으로 보이게끔 만든다. 그래서 관객은 이들 부부의 살림살이를 적절한 거리감을 가진 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도록 배려했다. 부부의 대화와 그들의 행동을 관객은 관음증자의 시선으로 ‘낮설게 보기’라는 누구의 시선에도 방해 받지 않은 채로 말이다. 이로 인해 이 영화의 창문(프레임)은 즉각적으로 관객에게 말한다. 당신(관객)들 개개인의 경험과 기억으로 이 낯설지 않은 모습(등장인물의 행동과 대화)을 당신들만의 이미지로 채워줄 것을 느릿느릿하게 주문하는 듯하다.

이 영화는 전체를 관통하는 롱테이크 기법을 통해서, 공간을 의미(주제)로 채우는 대신 흔적과 틈새로 채운다. 이는 시간을 공간에 한정하는 상식(의미)의 현실(기표)에서 반대로 공간을 시간으로 바꾸어 놓는다. 다시 말해 내용과 의미의 저편으로 잊히고 사라진 존재의 지시대상인, 흔적(index, 지표)으로 프레임을 채운다.

 2. 요구에서 욕망으로

“형, 이게 뭐냐! 난 장남이 아니고 차남이야. 왜 내가 장남도 아닌데 형 대신 이래야 돼. 엄마 쓰러져서 입원했으니 함 가봐, 장남처럼 하라 말이야. (에이 o팔)”

"돈 안 됨 이제 하지 마. 언제까지 이렇게 할 거냐고. 그리고 (한숨) 몸도 생각해야지.”

“괜찮아. 난 괜찮아!”

 주인공 상호는 친동생뿐만 아니라 극단 동료와 선후배로부터 늘 원망과 안타까움의 대상이다. 극단의 선후배들 역시 상호를 도울 처지가 못 되는 위인들이다. 극단 단원들은 하나 둘씩 이른바 돈 되는 극단으로 이적해 간다. 결국 상호의 창작 공연은 배우가 없어 무대에 올리지 못할 지경에 이른다.

모성의 권위를 벗어나서 아버지의 법인 상징계로 진입한 주체들(정상인)은 존재위에 에고ego라는 갑옷을 걸치고 전장에 내몰린 병사처럼 열심히들 살아간다. “어떡하니 마누라가 시퍼렇게 설치니. 미안해”, "선배 미안해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나도 살아야지 안 그래요?” “내가 오히려 미안해, 미리 말해 줬으면 좋았을 텐데, 출연료도 변변히 주지 못하고, 괜찮아.”

그는 아무런 할 말을 찾지 못한다. 아니, 말하지 않는다. 영화 <조용한 남자>에서, 서술자는 주인공 상호와 관객과의 동일시를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관객은 주인공이 향후 어떻게 할 것인지, 당장 시급한 연기자 문제, 아내의 어려움에 눈을 감을 것인지, 공연을 무사히 무대에 올린 방안은 있는지. 연기자의 외양(후줄근한 추리닝 차림)과 행동을 추동하는 그의 모습을 따라가다 보면, 관객은 조연들과의 동일화 현상을 경험한다. “너 참 깝깝하다. 어째 그러냐! 한심한 노무 0끼”

이제 상호는 정상인과 이방인을 가로지르는 경계선 위에 서 있는 남자임을 문득 느낀다. 경계인, 그는 죽음의 충동의 유희 속에 조용히 눈을 감고 위태롭게 그 위를 거닌다. 영화의 프롤로그에서 한 그의 대사다. “내버려둬라, 자고나면 낫는다. 내 병은 내가 안다.” 그는 자연 속에서 문화로, 즉 상상계에서 상징계로 들어서기 전에 어머니와의 ‘이자관계’ 사이의 자연 속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인간다움의 품위와 멋스러움, 그래서 동물들과 다른 문화인으로서의 삶보다 그는 주체(상호)라는 기표(이름)로 덧입혀진(에고), 문화인이 아니라 기표가 아닌, 존재로서 즉 어머니의 모태로부터 나온 자연인의 삶으로 회귀하고자 하는 것이다. 마치 그의 고단한 삶속으로 문득 우연히 어느 날, 무대의 어둠 한편에서 상징계를 뚫고 들어선 섬뜩하면서도 매혹적인 실재의 응시와 맞닥뜨린 것처럼.

 3. 조용함으로 외침으로

 

영화 <조용한 남자>에서 서술자는 단 한 번에 한해서 주인공 상호의 내적 심리적 깊이로 관객을 초대한다. 그래서 우리는 존재의 상실감에 완강히 저항하는 그의 시린 가슴을 비로소 엿볼 수 있다. 공연이 임박한 어느 날, 상호는 혼자 무대 위의 소파에서 잠을 청할 모양이다. 세트로 만들어진 모닥불은 추운 겨울밤의 한기를 녹여준다는 듯이 그는 모닥불 곁에 쪼그리고 앉아 양 손을 비벼댄다. 이러한 외적인 행동을 통해서 관객은 자연스럽게 그의 심리적 깊이로 따라간다.

그는 푸른빛의 음산한 효과의 조명과 함께 시퍼런 칼을 들고 계단을 조심스럽게 올라간다. 그리고 누구를 향해 눈을 부릅뜨고 증오에 찬 목소리로 속삭인다. “죽어, 죽어!” 서술자는 그것이 그의 꿈인지 실제 공연의 한 장면인지를 불분명하게 보여줌으로써 그가 환상의 아늑함으로 빠져 들지 못하고 경계를 헤매는 그래서 정상인과 이방인의 사이에서 머무르는, 다시 말해 ‘욕망하는 주체’에서 주이상스jouissance(쾌락의 원칙을 넘어 죽음의 욕동으로 치닫는)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내면의 모습을 보게 한다.

연극은 끝나고 단원들은 힘들었지만 뿌듯한 뒤풀이를 요란스럽게 즐기고 있다. 하지만 주인공 상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서술자는 천천히 그가 텅 빈 관람석에 혼자 앉아 동료들을 지켜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보여 지는 공간에서 보는 공간으로 나누어진 공연장에서 그는 여태까지 보여 지는 자신을 보고 싶다는 뜻이 물끄러미 조용히 알 듯 말듯 한 표정으로 보여 지는 공간의 흥겨운 판을 내려다보고 있다.

정상인과 이방인을 가로지르는 경계선에서, 환상과 욕망의 경계선에서, 무대와 객석의 경계선에서, 그는 머뭇거린다. 카메라는 그런 그의 모습을 아주 천천히 그리고 3분?의 롱테이크로 그의 모습을 조망해간다. 외화면에서 들려오는, 보여 지는 공간으로 부터 들려오는 잡음에 가까운 담지자 없는 목소리에 응답하듯이 웃는 듯 우는 듯 하는 묘한 표정으로 그는 보는 공간(객석)에서 (막 내린 무대의) 무엇을 보았을까? 서술자는 이 질문에 대해 말하지 않음으로써 에필로그를 열어 둔 채로 끝을 맺는다.


 영화 <조용한 남자>는 담지자 없는 음성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고 지각하는 상호의 모습으로 경계선의 울림과 틈새를 들려주고 보여주는 것이리라.       

Posted by housekeeper